초등교사였던 내가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현재 사업가이자 투자자이며,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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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교사일 때 했던 일들을 시간 순으로 적어본다.
나는 교사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교대에 다닐 때부터 그랬다.
아마 그 답답함은 내가 교사라는 직업 특성, 또는 그곳에 몸담는 사람들의 성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교사 집단에 대해서는 참으로 느낀 바가 많은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적어보겠다.
어쨌든, 줄곧 답답한 마음을 가졌던 나는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영문도 모른 채로 임용고시를 쳤다.
임용은 합격하기 싫은 마음이 반이어서 반만 공부했다. 그랬는데 넉넉하게 합격했다.
그 때부터 교직 자체를 좀 얕보았던 것 같다.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아도 쉽게 얻어지는 직업이었고, 그래서 매력이 떨어졌다.
첫해, 발령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유학휴직을 생각했다. 자꾸만 초등교사는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아이들을 만나니 그 생각은 잠시 누그러졌다. 그리고 첫 해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을 배우느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퇴근하면 진이 빠져 바로 누워 잠만 잤다. 하필 근무지와 거주지가 멀어서 통근에 2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퇴근 후에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꾸준히 했다. 발령 전부터 해오던 영어공부였다. 아무리 피곤해서 잠이 들어도, 매일 저녁7시 25분 알람에 일어났다. 그리고 7시 30분부터 8시까지 30분씩 수업을 들었다.
두 번째 해부터는 이왕 일하게 된 거, 열심히 해보자 싶었다. 수업준비, 학생지도, 학교업무에 온 열의를 쏟았다.
그 결과 두 번째 해의 아이들이 특별히 기억에 남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내 교직생활에서 남은 최대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줄곧 학교생활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해부터 대학원을 핀란드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학을 가면 뭔가 다른 것을 배우고 왜 내가 학교에 맞지 않는 것인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정 금액 이상의 장학금을 받지 않는 이상 경력 만 3년이 되어야 유학휴직을 할 수 있었기에 다음 해를 대학원 진학 준비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세 번째 해는 가장 편하지 않았던 해였다. 학교 업무와 담임 업무가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거의 손을 놓았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오히려 학교 일에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이 때부터 학교 바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집을 사세 세를 놓았고, 펀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국제연애를 시작했고, 방학 때마다 해외로 나갔다. 해외에서의 경험은 나의 사고방식을 통째로 뜯어 바꿔놓았다.
그간의 영어공부와 해외생활 등은 직관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데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영어는 언어 특성상 직관적인 사고를 키우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해, 만 3년차가 되어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했다. 원랜 핀란드로 가려 했는데, 국제연애를 하게 되면서 당시 사귀던 사람이 있는 국가로 바꾸었다.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교과전담을 맡았다. 세 번째 해에 아이들로부터 지친 상태여서 전담이 훨씬 수월했다.
대학원 유학은 목표 학교를 바꾸면서 새로 준비해야 해서 미루었다.
다섯 번째 해, 학교를 옮겼다. 새로 근무하게 된 학교는 모든 면에서 이전 학교보다 좋았다.
영어가 특기였기 때문에 영어 전담을 맡았다. 좋아하는 과목을 가르치니 아주 편하게 근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원어민 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학교 내에서 영어로 말할 상대가 있어 좋았다.
학교 생활이 따분하다고 생각될 무렵, 국제연애가 끝나고 헤어졌다. 내 의사가 아니었기에 당시 너무나 힘들었다.
슬픔은 깊었지만 짧았다. 완전히 극복했을 때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절대 국제연애 안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또 미국인이다.
대학원에는 준비해왔던 것들이 아까워서 지원을 했지만 떨어졌다. 사실 기대도 안 했다.
그 이후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펀드가 아닌 개별 주식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비트코인도 샀고 P2P 투자라는 것도 했다.
학교 밖에서는 온라인 사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신기해서 책도 보고 강연도 가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봤다. 이거다! 싶었다.
그 때부터 학교에 완전히 정을 뗐다. 굳이 억지로 눌러 참을 필요 없이, 열려 있는 기회에 뛰어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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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나는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시장을 전세계로 놓고 볼 수 있었다! 열심히 내가 할만한 일을 찾았다. 성공할 거란 확신만 든다면 바로 학교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원칙을 생각했다.
"몰라서 불안한 것이다."
알면 불안하지 않다. 내겐 확신이 필요했다. 온라인 사업이 가능하단 확신. 확신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선택했다.
세계의 일류 사업가, 마케터, 투자자, 심리학자의 책을 읽으며 내 불안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는 게 많아졌으니까.
한 해만 더 근무하고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섯 번째 해, 교사로서 근무한 마지막 해.
일을 그만두어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현금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 주식 투자와 함께 배당수익을 만들기 시작하려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주가가 폭락했다. 나는 갖고 있던 현금으로 떨어진 주식들을 싹 사 모았다.
주가는 V자 반등으로 그대로 회복했고, 일부 기술주는 급펌핑이 나왔다. 바로 그만두어도 될 만큼의 이익이 났다.
하지만 일단 한 해동안 해야 하는 일을 받았으니 끝까지 마무리를 잘하자 싶었다.
퇴근하면 SEO와 SNS를 배웠다. 부끄럽지만,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시간 들여 배워야했다.
뭐니뭐니해도 경제적인 공부와 자기경영, 인생철학 공부를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처음엔 유튜브 영상을 주로 보았지만 결국에 진짜 깨달음을 준 것은 책이었다.
연말, 나는 계획했던 대로 사직했다. 그 과정은 다른 글에 자세히 썼다.
관련글
여기까지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했던 일들이다. 요약하면,
- 영어공부를 했음
- 해외생활을 했음
-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직관적으로 생각함
- 온라인 사업에 관심을 가짐
- 진로를 바꾸기 불안함
- 책읽고 공부함
- 경제적 기반을 갖춤
- 초등교사 사직함
최대한 자세히 기억을 되돌리며 썼지만, 모든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사람마다 펀더멘탈이 무수히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초등교사 사직 후 요즘은...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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