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의원면직(사직) 후 일주일, 일상

의원면직을 하다

2월 18일에 명예퇴직하는 선생님들과 같이 퇴임식을 했다. 퇴임식을 하는 순간에도 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을 보고 있었다. 아쉬움보다는 시작의 설렘이 더 컸다.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튀어나가는 고무줄처럼, 나는 아주 먼 길을 뒤로 당긴 상태였다. 놓기만 하면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20/11/15 - 철밥통 7년차 초등교사가 사직(의원면직)을 하는 이유

 

2월 19일 종업식, 아이들 및 선생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교실 내 모든 짐을 정리했다.

 

 

열심히 정리하고 청소한 교실

2년을 머물렀던 교실을 마지막으로 나서는 순간에 시원섭섭한 마음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내 기억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보니 정든 집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마음도 잠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 학교 일이 아니라 내 일이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저녁에서야 무언가를 눈치챘다. 마치 학교에서 교사였던 적이 없는 것처럼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종업식 당일부터 바로 바톤 터치. 교실을 나설 때 아쉬웠던 마음이 무색했다.

 

퇴직급여 청구

시간이 흘러 3월 1일, 공식적으로 초등교사직을 면했다. 3월 2일에 바로 퇴직금을 청구했다. 다시 공직에 돌아갈 일도 없을 것이고, 돈은 내가 직접 굴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두 일시금으로 신청했다. 그리고 매달 3만 원씩 넣던 교직원공제회 저축도 해지했다. 사업자 등록도 3월 2일에 바로 해치웠다.

 

 

 

바쁘다

사직을 하면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좋은 곳에 놀러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닐 줄 알았는데, 꿈이었다.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시간을 세세하게 나누어 계획을 짜게 되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잠들기 전까지 계획했던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겨우 일을 끝마칠 수 있다. 시간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지나고 나면 후회할 것 같은 일들을 모두 하고 있다.

 

바람쐬러 나가서 본 바다

그래도 놀러 나가서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려 노력하고 있다. 종종 시간이 아까워서 조바심이 들기도 하지만, 쉴 때는 꼭 잘 쉬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이다. 아직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언제쯤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완전히 떼어낼 수 있을까. 정말 안 좋은 말버릇이라 생각하는데, 혹여 습관이 될까봐 경계하고 있다.

 

 

천천히... 바쁘지 않게

내 시간과 에너지 대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마음을 좀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실내에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 양가감정을 한 번에 해결해줄 해결사들을 불렀다.

 

좌 칼라데아 세토사, 우 마오리 소포라

해결사들은 바로 식물이다. 하나는 잎의 무늬가 예쁜 칼라데아 세토사이고, 다른 하나는 마오리 소포라이다. 이 친구들을 일하는 동안 책상 위에 둔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도 얻고 즐겁기도 하다.

 

마오리 소포라

특히 마오리 소포라는 너무 귀여워서 보는 마음이 각별하다. 뿌리 건강에 좋은 토분을 사놨는데 조만간 분갈이를 해줘야겠다. 오래 오래 같이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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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를 그만둔 지 일주일, 미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느라 덤덤하다. 행복감이 막 몰려온다거나 후회된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는 감정이 없다. 그냥 평상시와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사직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단단하게 굳어지고 있다. 어차피 갈 길이었으니까. 그리고 교사가 아니라 프리랜서(디지털노마드)로서 일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라이프 스타일에 딱 맞았다. 배우는 만큼, 하는 만큼 성과가 달라지는 점도 마음에 든다. 교사는 근무년수(시간)를 채워야만 봉급이 올라갔던 반면에, 지금 하는 일은 시간과 노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소득이 나온다. 효율성이 먹히고, 연계효과가 쉽게 일어나는 일. 이게 은근히 만족감을 준다.

 

 

다음에는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소득을 얻는 방법을 자세히 써봐야겠다. 수십 년 후에 이 때를 돌아볼 것을 대비해서. 그리고 이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 절반 이상이 '교사 사직' 키워드로 유입되는데, 아마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닐까 싶다.